몇 년 전 시도했다가 중도포기한 책인데 이번에 다시 꺼내들었다. 중간에 각종 경제학파를 설명하는 장에서 다시 포기할 뻔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시간을 들여 완독하였다. 책 앞부분에서 저자는 이 책이 쉽다며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했는데 고등학교 수준을 너무 높게 보신 것 같다. 내 생각엔 어디까지 학교를 다니고 몇 살이든 경제에 문외한이라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그때로 돌아갔으면 나는 또 중도포기 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경제에 관심이 너무 많고 절박해서 ㅎㅎ
2014년에 쓴 책이라 인용되는 자료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의 것들도 있으므로 감안하고 봐야 한다. 경제는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팔로업 해줘야 한다.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라는 부제처럼 교과서 같이 정석적인 설명 덕에 개념 정립에 도움이 된다.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금융 시스템과 상품에 대해 이렇게 잘 설명한 책을 본 적이 없다. 이 책의 8장인데 두고두고 읽고 싶은 내용이다. 만약 내가 지금처럼 주식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물, 옵션에 대해 설명해도 전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니까. 시장을 볼 때 때때로 지적 공백을 느끼던 차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저자가 코로나 시기 최신 경제까지 다룬 신간을 꼭 출간해주시면 좋겠다!
48)중앙은행은 아무도 돈을 빌려 주려 하지 않는 금융 위기 시에 제한 없이 돈을 빌려 주는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한다. 애덤 스미스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없어서 금융 공황이 닥치면 대처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54)왜 역사가 중요한가? 역사는 현재에 영향을 준다. 과거의 일이 현재의 일로 이어져 있을 뿐 아니라 과거에 벌어진 일이 현재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노예, 아동노동, 관직거래..) 역사는 경제학 이론의 한계를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116)칼 마르크스 “인간은 역사를 자기 손으로 만든다. 스스로 선택한 상황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환경을 바꾸는 동시에 환경의 산물인 것.
180)주식에는 우선주와 보통주가 있다. 우선주를
가진 주주는 기업이 유보하지 않고 주주들에게 나누어 주는 이윤, 즉 배당을 받을 때 우선권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우선권은 기업의 주요 결정에 관여하는 투표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주어진다. … 투표할 권리를 가진 주식은 보통주다. 1주 1표제가 관례다.
197)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은 자신의 잘못이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럴 만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며,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 부자들이 살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렇게 설득당한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기의 이익과 상반되는데도 부의 재분배를 촉진하는 세금과 복지 지출을 낮추고 기업 규제와 노동자 권리를 줄일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212)조리, 청소, 육아 및 노약자 돌보기 등 가사 노동은 국내총생산이나 국민총생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고용한 가사 도우미와 결혼하면 국가의 총생산량을 줄이는 것이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하나도 안 웃겨요..) 가사 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여성의 노동은 엄청나게 과소평가되고 있다.
248)투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소비를 희생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미래에 더 나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현재의 생활 수준을 희생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국가 차원에서 얘기한 건데,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듯)
435)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 (최진기 강사는 경제와 도덕을 제발 분리해서 생각하자고 강의하던데 사실 나도 이 책의 의견에 동의한다. 어떻게 분리해?)
282)1990년대 이후 투자은행은 ‘담보화 부채 상품’이나 ‘파생 상품’ 같은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고 거래하는 데 점점 더 주력하기 시작했다. 주식과 채권을 팔고 기업 인수 합병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업무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286)파생 상품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도박이다.
287)많은 파생 상품이 ‘맞춤 제작’이 된다. 현대적인 예로는 기업이 환율 변동으로 입는 피해를 막기 위해 특정 기간, 가령 23일 후에 미리 정해 놓은 환율로 특정 통화를 환전하겠다는 계약을 투자 은행과 맺는 경우. 이런 식으로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맞춰서 만들어지는 맞춤 파생 상품을 장외 거래over-the-counter(OTC) 파생 상품이라고 부른다. 파생 상품 계약을 ‘표준화’시키면 장내에서 거래될 수 있다. 이런 상품을 장내 거래 상품이라 부른다. ‘선도forward’를 표준화하면 ‘선물futures’로 이름이 바뀐다. … 선도가 단일한 미래의 사건에 대한 도박이라면, 스와프swap는 다수의 선도 계약을 한데 묶은 것으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도박이라 할 수 있다.
296)지난 10-20년 사이 주주들의 인내심은 더욱 줄어들었다. 영국 내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1960년대 중반 5년이던 것이 1980년대 2년으로 줄었고 2007년에는 7.5개월로 급락했다. (2021년 현재는 더 짧을 듯) 그 결과 기업의 전문 경영인과 점점 세력이 커져 가는 단기 주주들 사이에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깃발을 건 ‘비신성 동맹’이 맺어졌다. 경영인들은 천문학적 보수를 받는 대신 제품의 질과 노동자 서기 저하라는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단기 이윤을 극대화한 다음,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형태로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상부상조 관계가 이루어졌다. (2020 코로나 사태 때도 벌어진 일) … 이런 관행으로 인해 기계 설비, 연구개발, 훈련 등에 투자할 재원에 고갈되어 기업의 장기적 생산성 향상에 고개를 돌릴 여력이 없어졌고, 결국 경쟁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즈음이면 애초에 이 쇠락을 초래한 장본인인 전문 경영인과 단기 주주들은 대부분 그 기업을 이미 떠난 후이다. (먹튀..) 새로운 금융 시스텐은 비금융 기업의 경영 시계를 줄인 (=단기 이윤 집착) 데서 그치지 않고 기업이 더 ‘금융화’하도록 만들었다. 즉 비금융 기업들이 금융 사업을 벌이고 거기에 점점 더 의존. 전통적인 사업 분야보다 금융 자산에서 이윤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많은 기업들이 점점 더 많은 재원을 금융 자산 관리에 쏟아부었다.
298)게다가 금융 산업과 규제 기관 사이에 양방향으로 고용 관계가 오가는 일이 더욱 빈번해짐에 따라 굳이 로비가 필요하지 않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금융 부문에서 일하다가 규제 감독 기관으로 옮긴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자기가 규제해야 하는 산업에 동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회전문’ 인사라고 부른다. (ㅇㄱㄹㅇ.. 미국 금융 규제 기구 고위직이 투자 은행 출신이라든지) … 규제 당국 일부 고위 관리들 중에는 직장을 그만둔 다음에 새로운 직장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직접 사모 펀드나 헤지 펀드를 만들어 이전에 자신이 혜택을 중 당사자들로부터 돈을 투자받는다. 그가 투자 펀드 관리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친금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금융 부문이 너무 힘이 세지고 그 종사자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후한 보상을 안겨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2008년 위기 이후 급진적 개혁을 꺼린 것이 단지 로비 때문만 아니라, 금융 산업에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는 이데올로기적 확신도 큰 이유다.
302)금융 기업은 여러 상품을 한데 묶고 구조화하는 등의 각종 기법을 통해, 자산 거품을 지속 가능한 것처럼 속여서 자사의 이윤을 높이는 데 아주 능숙해졌다. 거품이 터지면 이 기업들은 민첩하게 경제적 힘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구제 금융을 확보하고 정부 보조금을 받지만, 그렇게 해서 비어 버린 정부의 금고는 세금을 올리고 정부 지출을 줄여 전 국민이 다시 채워야 한다. 이 시나리오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엄청난 규모로 현실화되고 있지만 이미 지난 30년 동안 좀 더 작는 규모로 전 세계 각국에서 수십번 되풀이된 일이다.
332)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공평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복지 혜택과 교육 등) 가난한 사람들이 고용 시장에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고(차별을 줄이고 최고급 직종의 ‘끼리끼리’ 문화를 없앰으로써)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시장을 조작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381)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민주 정치는 1인 1표 원칙이고 시장은 1원 1표니까.
445)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생계를 잇느라 몸은 지쳐 있고 정신은 개인적인,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 즉 경제학을 배우고 경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겁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수 있다. 일단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초적인 이해가 생기고 나면 인생의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갈수록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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