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민아의 복귀작이자 김선호가 주연다운 주연으로 나오는 로맨스물이라서 관심을 가졌던 ‘갯마을 차차차’.
요즘 내가 본방사수하는 유일한 드라마다. 영상통화 하고 있었던 하루 제외하고 모든 회차 본방사수했다. 방송 종료 직후 스트리밍이 제공되는 이 빠르고 편리한 시대에 본방사수하게 만드는 이 드라마의 매력이 뭘까. 내가 매료된 이유에 대해 스스로 정리하면서 적어보고 싶어서 블로그 창을 켰다.
처음 ‘갯마을 차차차’를 봤을 때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상처를 안고 지방 작은 마을로 이사온 여자와 자꾸 왠지 신경 쓰이는 그 동네 토박이 남자의 이야기를 메인으로,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동네 사람들의 코미디와 저마다의 사연이 펼쳐진다는 컨셉 면에서 꽤 유사성을 느꼈다. ‘동백꽃 필 무렵’ 같은 범죄 스릴러적 요소는 아니지만 ‘갯마을 차차차’에도 공진이라는 가상의 배경과 주인공에 얽힌 미스터리들을 배치해두었다. 제작진이 레퍼런스로 삼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리메이크 기획과 개발 과정에서 얘기는 나왔을 법 하다. 그만큼 ‘동백꽃 필 무렵’의 인기가 엄청 났으니까.
하지만 ‘갯마을 차차차’는 ‘동백꽃 필 무렵’의 아류작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 이 드라마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이렇다.
1. 힐링 드라마 장르
‘부부의 세계’, ‘펜트하우스’로 대표되는 센 드라마가 강세였던 한국 드라마. 하지만 현생이 빡세서 지친 나에게는 드라마까지 빡센 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객관적인 퀄리티는 훨씬 떨어지지만 그냥 틀어놓으면 부담 없고 마음이 편안한 일드를 틀어놓기도 했다.) ‘갯마을 차차차’는 완전히 힐링 드라마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감수성을 건드리는 드라마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인데 드라마라도 마음 편히 보고 싶다.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도 선하고 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라 더 어울린다.)
2. 주인공의 상황
나는 윤혜진에게서도 홍두식에게서도 나 자신을 본다. 서울에서 열심히, 나름대로 치열하게 자기 커리어와 삶을 꾸려나가던 윤혜진은 어떤 계기로 몸 담던 직장과 서울을 떠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홍두식은 겉으로는 누구보다 밝고 활달하지만 속으로는 깊은 상처가 있고 마음의 문을 사실상 걸어잠그고 있는데, 명문대를 나온 이력과는 (사회 통념상) 어울리지 않게 돈 되는 일은 뭐든 하는 프로N잡러로 살아가고 있다.
윤혜진은 굉장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가치관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자신의 서울 친구들의 초대로 홍두식과 함께 골프를 치러 가게 되자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홍반장이랑은 삶의 잣대가 다른 애들이야.” 난 이 문장이 참 와닿더라.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삶의 가치관이 저마다 더 또렷하게 정립되고 아무래도 그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치게 된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하니까. ‘끼리끼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마 꼭 주인공들의 상황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에서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지금 내 자리에서 버티는 것도 감당하기 버거운 경우가 많으니까. 서울공화국에서 승자로 살아남기가 어디 쉽나. 팍팍한 서울살이에 너무 지쳤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 그립고, 가면 너무 좋다. 자꾸 가고 싶다. 하지만 서울살이를 완전히 놓지는 못한다. 윤혜진처럼.
물론 이 드라마의 원작이 옛날 한국영화이고 주인공 설정도 가져왔지만 현재 20-30대의 고민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작가님이신 것 같다.
3. 여성에 대한 시선
드라마는 에피소드를 통해 여러 번 여성에 대한 시선을 드러낸다. 초반부 치과 성추행이나 동네 치한은 의도는 알겠지만서도 ‘굳이..?’ 싶은 살짝 과하고 튀는 느낌을 받았지만, 여화정의 이혼에 얽힌 에피소드나 임신한 함윤경이 겪는 고충에 대한 에피소드, 최애 아이돌에 푹 빠진 청소년 오주리 등 여러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시도한 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시도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회까지 좋은 드라마로 남아주길. ♥
시간이 흘러 언젠가 이 드라마를 다시 마주하게 됐을 때 지금의 내가 생각날 것 같다. 고민 많고 눈물 많고. 돌아볼 그때의 나는 ‘그랬었지’ 하며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영상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진기의 생존경제 2018ㅣ무료 경제강의ㅣ경제 상식 늘리기 (0) | 2021.12.09 |
---|---|
디지털 식민주의ㅣ미래는 탈중앙화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0) | 2021.11.13 |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ㅣ넷플릭스 경제 다큐ㅣ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 (0) | 2021.11.05 |
익스플레인: 돈을 해설하다ㅣ넷플릭스 경제 다큐 추천ㅣ호로록 보기 좋은 2021년 최신작 (0) | 2021.11.04 |
인사이드 잡 (Inside Job)ㅣ2008 금융위기 다큐멘터리ㅣ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경제 다큐 (0) | 2021.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