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ㅣ이나가키 에미코ㅣ인생의 사고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인간미 넘치는 책

기로기 2021. 11. 6. 09:45

이 분 참 재밌으면서도 진정성 있게 글 잘 쓰신다. 벌써부터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책의 내용에 모순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세탁소 같은 동네 가게들이 잘 되어야 한다, 결국 타인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다고 얘기했지만, 돈이 드는 세탁소 가는 대신 집에서 빨래를 직접 했다거나... 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아이러니인 걸 어쩌겠나. 모든 게 완벽히 들어맞기란 힘들다. 

나는 이렇게까지는 절대 못 살겠지만,
물건에 대한 욕망으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나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었고
물건을 최대한 들이지 않고 살아야겠다 싶었고
선풍기를 들고 옮기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드레스룸용 선풍기를 하나 더 살까 고민하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집안일을 쓸모없는 일이라 경멸했던 지난 많은 날들도 반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쓸모로 나누는 끔찍함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거의 쓰지 않았던 나의 뇌가 삐걱삐걱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모든 걸 돈과 물건으로 해결하려 들었다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 힘이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손발로 해보려는 것. 어쩌면 세상은 지금 그걸 불편이라 부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불편이란 삶 그 자체, 편리란 죽음일지도 모른다

냉장고 가득 채워넣으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상하게 만들었나! 어쩌면 내 인생 역시 이런 꿈 저런 꿈 그러모아 한자리에 방치한 다음 조금씩 상하게 만들어온 건 아닐까? 내 인생이 그런 망상으로 소비되어온 건 아닐까?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이렇게 적은 물건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사라졌다

계속해서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지름길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진정한 풍요로움일까. 가능성을 넓힌다는 명목 하에 욕망을 폭주시키고 불만을 등에 업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물건을 손에 넣는 것만 목표로 삼고 살아왔다. 돈을 벌어 물건을 사면 편리하고 풍요로워진다고 믿었다. 정말로 필요한지, 그것이 나를 풍요롭게 하는지 그런 사고는 완전히 멈춘 채였다. 그렇게 물건은 계속 늘어났고 늘어난 물건들에 둘러싸여 집은 점점 더 좁아졌고 좀 더 넓은 집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악착같이 일하고 경쟁하고 시간이 모자라 더욱 편리한 것들을 원하게 되고 또 물건이 늘어나고... 욕망은 악순환을 계속하며 커져갔다

사람은 공적인 의료와 간병 시스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존재해야 비로소 살아갈 기운이 생겨난다

우리는 편리해졌다며 기뻐하면서 실은 ‘산다’는 걸 조금씩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산다는 것은 움직인다는 것이고, 움직인다는 건 산다는 게 아닐까

일을 한다는 건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서로 도우며 열심히 살아내는 것 자체에 삶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이전에는 집안일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었다. 아무도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영원한 반복. 그야말로 쓸모없는 일. 하지만 가전제품 없이 살면서 오히려 집안일이 즐거움이 되었다. 최대의 오락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풍요로워지기 위해 사람만 차별화한 게 아니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남보다 위에 올라서기 위해, 내 시간을 차별해왔다. 쓸모없는 시간을 지겹게 여기고 배척해왔다. 그래서 노력하면 할수록 내 인생의 일부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게 바람직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난 더 이상 집안일을 차별하지 않는다. 절대로. 쭈그려 앉아 빨래를 하는 시간을 결코 쓸모없는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바로 나를 위해서다. 나 역시 결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매순간, 누구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한 채 살아가는 것. 산다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그렇지만 귀찮기에 멋질 수 있는 일이다

 

최초작성일 : 2018.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