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의문에 공감가는 게 많아서 모든 소설이 궁금한 작가다.
어렵게 쓰지 않고 재밌고, 무심한데 충격적이면서, 시의성 높고,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이 책도 궁금했는데 마침 <릿터> 외계인 주제에서 이 책의 리뷰가 있길래 바로 소설을 읽어보았다.
이 책을 읽고 <릿터>에 실린 글도 마저 읽었는데 역시 좋았다.
정상성을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서 이전에는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남들 다 가는 길을 안 가기로 하면서, 스스로 나에게 솔직하고 싶다고 느낀 후부터 많이 생각하게 된 듯하다.
옛날에 비하면 정상성의 경계가 많이 흐려지고 넓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갈 길은 한참 멀다.
그런데 이 책은 하다하다 거기까지? 라는 수준까지 가버린다. (키워드 : 근친상간, 살인, 인육섭취)
만약 주인공 부부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속된 말로 '또라이' 같다고 하거나 치료받아야 된다고 했을 것 같은 수준.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꼬집는 연애지상주의나 아이 낳는 기계 취급 등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간다.
ㅡ
86) "아이의 목숨은 아이 것이 아냐. 어른 손에 달렸지. 엄마가 아이를 버리면 아이는 밥도 굶게 되고, 어른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어. 아이는 모두 그래."
유우가 화단에 핀 꽃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른이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남아야 해."
주변 사람이 하나둘 인간 공장의 부품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다.
언제 이렇게 모두 인간 공장에 세뇌된 걸까. 모두 '사랑'을 꿈꾸며 그에 걸맞은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런 현상이 일제히 발생하는 게 왠지 섬뜩했다.
"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할 때마다. 여자들은 모두 사랑 이야기를 좋아했고, 끝까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안쓰럽게 여겼다.
203) 내가 인간 공장의 도구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포하피핀포보피아성인이기 때문에 지구성인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젊은 여자는 반드시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해야 하며, 그러지 않는 사람은 '외롭고' '재미없으며' '나중에 후회하는' 청춘을 보낸다는 낙인이 찍힌다.
"되찾아야 해."
미호는 늘 내게 그렇게 말했다. 원하지도 않는 걸 왜 되찾아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곧 공장으로 출하되는 우리는 출하를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먼저 출하 준비가 된 이들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사람을 '지도' 한다. 나는 미호에게 '지도'받은 것이다.
222) "걔는 생리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나이도 많은데 벌써 폐경 온 거 아냐?"
"어머, 당신도 참. 생리는 아직 괜찮아요. 노산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혼시키고 새 여자를 붙여주는 게 낫지 않겠어?"
"도모오미가 옛날부터 좀 힘든 아이였잖아요. 원체 내성적이기도 하고. 일 년쯤은 그냥 지켜보자구요. 그런데도 아이 소식이 없으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요. 남자는 여자랑 다르게 나이를 좀 먹어도 상대만 어리면 괜찮잖아요." 차라리 이렇게 도구 취급당하는 게 연애나 사랑 타령보다 훨씬 명쾌해 화도 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주인공의 시부모)
엄마의 말에 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주 잘 알지.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경탄하게 될 거야.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이 세상에 있구나 하고."
엄마와 언니는 '어머니'가 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마치 종교를 설파하듯 속삭였다. 나는 세뇌되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다. 하지만 '모성은 멋져'라고 아무리 염불을 외워대도 그것만으로 세뇌당할 리는 없었다. 결국 위화감만 커질 뿐이었다. 제발 더 연구해서 잘 세뇌해줘. 그런 생각을 하며 엄마와 언니의 '네 마음 알아' 주문을 쭉 듣고 있었다.
언니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도 사춘기 때에는 힘들었어. 하지만 남편을 만나고 처음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됐지. 남편이 날 발견해줬기 때문에 이렇게 여자의 행복을 누리는 거야. 남편에게 '간택돼서'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나는 이 행복을 반드시 지킬 거야. 나쓰키 너도 옛날 일은 잊고 얼른 여자로서의 행복을 찾아. 그게 우리 자매에게 가장 좋은 길이니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귀를 막았다. 삐삐삐, 전자음이 들리며 언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듯 멀어졌다.
"유우도 이제 겨우 정신 차리고 '정상'적으로 살려는 것 같더라. 너희가 떠난 뒤에 삼촌한테 말해서 아키시나 집에서 나왔대. 지금은 잠시 삼촌 집에 얹혀 살면서 취직 준비도 하고, 집도 알아보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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