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알고 있던 책인데 최근에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고 나서 바로 읽어보았다.
이렇게 책이 나오고 드라마가 나와도 아직까지 인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인셀은 단지 영국만의 현상도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주제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 년 전 한국을 휩쓸었던 퐁퐁남 논리도 인셀에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예쁜 여자'만 원하면서 자신의 외모는 케어하지 않는 모순. 여성이 성적으로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주고 상대해야만 자신의 존재가 설명되는 존재들. 여성을 동료 시민, 인간이 아니라 ‘먹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끔찍함. 그럴 권리가 있다는 발상. 경쟁자인 잘난 남성보다 어째서 여성을 더 혐오하는 거지?
그놈의 '소속감'. 팬덤에 대해서도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더라도, 극우 세력이 개인으로서의 나는 힘이 없는데 결집해서 큰 힘을 휘두르고 거대 세력이 된 듯한 느낌, 권력의 맛을 보는 걸 즐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픽업아티스트에 대해서는 그저 여자 꼬시는 기술을 돈 받고 파는 사람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여자를 사냥감, 정복대상, 성적대상으로 보는 픽업아티스트도 여성혐오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커리어를 단절하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만 지내는 여성들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한지도 설명이 되었다.
정말 흥미로웠던 점은 이런 남성들이 '빨간약'이란 표현을 쓴다는 점이다. '빨간약'은 갖다붙이기 나름이구나.
허위 강간 고발에 대한 공포 대목에서는 정말 공감이 갔던 게, 만연해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는 관심이 거의 없으면서 어쩌다 무고 사례가 하나 나오면 무섭다 조심하자 등등 큰 주목을 보내는 것을 실제로 봤기 때문이다.
저자 로라 베이츠가 위협 속에서도 얼마나 열심히 이 책을 썼는지 느껴졌고, 그녀의 다음 책도 기대한다.
63) 이들의 생각과 언어가 온오프라인 모두의 다른 커뮤니티들과 이데올로기 집단에 침투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면 인셀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집단들 속에는 일종의 낙수효과가 있어서, 인셀 웹사이트에서 씨앗처럼 시작된 어떤 신화나 편견이 대안우파나 남성권리운동가를 통해 배양되고 무럭무럭 자라나다가 결국 더 넓은 주류 사회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이 과정은 이어지는 여러 장에서 추적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셀의 생각이 음지에 머물러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셀 커뮤니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147) 세라트 역시 남성권리운동가들의 주장을 특히 연상시키긴 하지만 모든 여성혐오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번씩 등장하는 체크리스트를 언급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데이트 비용을 내야 하고 여자들에게 굽신대야 하며 ... 숭배보다 못한 것은 다 혐오' 라거나 '결혼 같은 제도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남자들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는 식이다. 믹타우와 남성권리운동가들은 모두 이혼에 유독 관심이 많다. 이들은 이혼을 여자들이 무고한 남자들로부터 돈과 재산과 경우에 따라 아이들을 강탈할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일방적인 절차로 여긴다.
185) 가령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혈거인 선조들은 이 사회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옹호하기 위해 흔히 진지하게 인용된다. 남성 권리운동가들은 더 이상 여성이 전문직을 갖겠다고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 말고(특히 여자들의 두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통념이 강한 과학, 기술, 공학, 수학 같은 전통적으로 남성 일색인 영역에서) 집에 들어앉아서 남편과 자식을 돌보라는 생물학적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가족과 도덕적 가치의 쇠락을 여성 (그중에서도 특히 직장 여성)의 탓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또는 힘센 남성 가장과 돌봄과 내조에 충실한 여성 배우자를 당연히 여기던 시절에 대한 향수 어린 묘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3) 남성권리운동가들은 어쩌면 그 어떤 매노스피어 커뮤니티들 보다 더 열심히 매우 실제적인 문제와 고충들을 밝혀냈는지도 모른다. 육체노동자들의 안전한 노동환경에서부터 수준 미달의 정신건강 대비책과 부모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이들은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었다. 남자들을 틀에 가두고, 좌절시키고, 깎아내리고, 상처와 피해를 주는 건 여자들, 페미니스트들이 아니라 남성성 그 자체, 아니 남성성을 수행한다는 의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억압적이고 유독하고 자기방어적인 입장이다.
232) ‘트롤들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말라는 조언은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늘 여자를 괴롭히고 하대하고 비하하기 마련이므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여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그다음으로는 만약 이게 뿌리 깊고 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고 선택을 제한하여) 일제히 한구석에 몰아넣어야 하는 것은 (잠재적인) 피해자들이라는 인식 역시 깔려 있다. 대신 남성을 대상으로 일괄적인 대책을 세우거나 예방 조치를 시행하는 등 남성들의 자유로운 운동에 비슷한 영향을 주는 제안은 필연적으로 신속하게 분노의 백래시를 촉발한다.
242) 주류 집단들이 온라인 트롤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부추기고 방조하는 방법은 이뿐이 아니다. 사실 트롤과 미디어는 서로에게 기생하는 대단히 문제적인 관계다. 트롤들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미끼를 던져서 대중매체가 자신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 세간의 관심을 얻고 존중받을 만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쌓이면 자신들의 명분에 좋기도 하고, 전국 언론이 자신들이 지어낸 혼란스러운 사기극을 진지하게 여기는 모습을보는 데서 그냥 '빅재미'를 얻기 때문이다. 한편 나날이 경쟁이 격화되고 온라인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매체들이 조회수와 관심, 광고 수입을 놓고 처절하게 경쟁하고 있기에, 트롤이 양산하는 터무니없고 충격적인 콘텐츠를 다룰 경우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논란과 낚시성 클릭의 전리품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잘못된 콘텐츠를 보도함으로써 평판에 금이 가는 피해를 능가할 때 가 많다.
262) 레핀의 사례뿐 아니라 학술 연구들은 남성의 폭력과 성별 고정관념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코프먼의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가령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2018년의 한 연구는 ‘결혼, 가족, 성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남성의 지배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런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을 가진 남자들은 여성과 자녀가 자신이 기대하던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며 비난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 적법한 사회적 통제의 한 형태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정폭력이 가부장적인 통제력과 소유권을 행사하는 수단이라는 입장은 카일라 헤이스Kayla Hayes의 사례 같은 여러 사건을 통해 생명력을 얻은 이론이다.
책에서 설명한 수많은 범인과 이들의 행위는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즘으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인셀이 여성 혐오라는 동기로 공격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사건에서 당국이 테러리즘 기소를 꺼내든 사례는 단 한 번, 애슐리 노엘 아르자가의 살인사건뿐이었다. 여성혐오 범죄를 계속 테러리즘으로 기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세 가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첫째, 우리 사회는 여성혐오가 동기로 작용하는 폭력적인 극단주의를 아직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둘째,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둔감하다. 셋째, 남성우월주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규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327) 젠더 정의 NGO 프로문도promundo의 설립자이자 CEO인 게리 바커는 거창하게 학계와 결부되어 이런 관점이 정상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인셀 자체보다 훨씬 큰 위협이라고 생각 한다. 그는 내게 '조던 피터슨이 자기 담론을 정상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 보면 잠이 잘 안 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그걸 포장하는 방식을 보세요. 그 사람처럼 그걸 사이비 과학으로 포장하는 다른 사람들도요. 그게 무슨 진화생물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그 사람의 경우는 유대기독교 전통에 의지하죠. 그게 과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는 그게 주류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걱정입니다. 인셀과 소수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친구의 형제처럼 보이는 남자들, 예의 바른 동료들, 공개석상에서는 여성혐오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을 "그래, 난 이런 페미니스트 따위는 상대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공간으로 슬쩍 떠민다는 게 더 겁이 납니다.”
353) 성난 백인 남성들은 평등을 실행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자신의 밥줄을 위협하는 행위로 둔갑시킨다. 그리고 진보는 축하할 일이 아니라 두려워할 일이라고 다른 남성들을 부추긴다.
혼치 않은 허위 강간 고발 사례를 부각함으로써 논란을 부추 기고 온라인 폭도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미디어의 빤한 속내에서 우리는 이런 패턴을 본다. 허위 신고자가 받는 처벌과 성폭력 가해자가 받는 선고를 비교하면서 마치 두 문제가 동일선상에 있다는 인상을 주고, 두 범죄가 비슷한 비율로 발생한다는 식의 오해를 조장하는 경향 속에서 이런 패턴은 또 발견된다.
355) 대규모의 대표적 통계를 사용해서 시스템 차원의 문제임을 증명하고, 여성들이 요청하고 있을 뿐 실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다가 가해자를 사회적 편향과 억압의 진짜 피해자로 그리며 역전시키는 것, 이는 전형적인 인셀 이데올로기다.
법이 잘못 집행된 흔치 않은 개별 사례를 가지고 시스템 전체가 완전히 남자들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고 여자들의 조종과 거짓말이 판을 친다고 주장하는 것, 이는 남성권리운동가들이 애용하는 전략이다.
요즘에는 남자들에게 너무 적대적인 분위기여서 그저 여성들과 함께 지내는 걸 좋아할 뿐인 남자들도 커리어와 미래가 박살 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 이는 믹타우의 철학이다.
허위 강간 고발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의도적으로 거짓 통계를 퍼뜨려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고 피해자를 몰아세우는 것, 이는 발리자데 같은 픽업아티스트들의 단골 메뉴다.
383) 학교도 이런 혼란과 성적 괴롭힘에 항상 잘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지어 폭행을 당한 여학생들이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여' '남자애들이 그렇지 뭐' 같은 말을 교사에게 들었다는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일부 교사들은 이런 식으로 남학생들이 이제 막 온라인으로 접하기 시작한 바로 그런 종류의 성차별적인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일상으로 안착시키고 재생한다.
그러므로 여성혐오는 젊은 남성들이 그게 혐오라는 걸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그들의 신념 속으로 스며든다. 그건 여성혐오가 아니다. 남성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건 여성혐오가 아니다. '진정한'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건 여성혐오가 아니다. 생물학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들 온라인에서 킬킬대는데 그게 여성혐오일 리 없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소년들은 자신이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들은 온순하고 무구하다.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되뇌는 거짓말과 틀린 사실을 지적하는 게 정당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를 자주 목격하고 설득력 있게 포장하는 목소리에 길들다 보니 그게 혐오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극단주의적 테러의 위협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 젠더에 대한 증오와 공격자의 압도적 다수가 남성인 점, 여성혐오는 폭력적인 극단주의의 한 형태 라는 논의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는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전문가들은 모두 이 의견에 동의한다.
리사 스기우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테러와 같은 종류의 담론에서 언급되는 건 아니에요••·. 아직 (위협이) 심 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고, 예를 들어 이슬람 극단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는 건 확실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허스트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냥 너희들이 온라인에서 접한 정보가 허위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출발점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이 스스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이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교실에서 저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귀 기울이고 있는 그 사람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래, 그 문제를 함께 탐색해보자. 그 말을 어디서 들었니? 그 세계관 또는 의견을 따라갔을 때 어떤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될까?'라고 말하는 쪽에 더 가까워요." 그는 이렇게 할 때 긍정적인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한다. 세상이 자신들을 믿어주지 않는다며 진작부터 비운의 예언자 행세를 하는 매노스피어 선동가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남성성에서 진짜 골치 아픈 것 중 하나는 그게 너무 규범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난 그냥 교실에 들어가서 '이 목록은 이제 끝났고 우린 이제 너희한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목록을 줄 거야’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어쩔 수 없이 지금이랑 똑같은 상황을 낳을 거잖아요. 자신이 기준에 맞춰 살지 못한다는 기분과 패배감, 거기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무기처럼 사용하려는 행동같이 말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주는 게 아주 중요해요.
475) 이 책을 쓰는 건 두렵지만 저항 행위기도 하다. 사람들이 문제가 존재하는 줄도 모른다면 우리는 거기에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일단 한번 알고 나면 모두에게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 할 책임이 생긴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라는.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내가 그걸 아는 건 직접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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