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출생, 이민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대한민국을 진단하는 책이다.
아주 재밌게 읽었다.
우선 시작할 때 인간이 기존의 것이 싫은 상황에서 택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이탈, 저항, 순응부터 설명한다.
이 책은 이탈, 즉 엑시트에 초점을 맞췄다. (나도 일종의 이탈자라고 볼 수 있기도 함)
우리나라에 이민이 이미 이렇게 진행이 많이 됐는지 몰랐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임금이 높아 이주해오기에 좋아서 외국인력 유입이 많이 될 거라 본다.
<피크아웃 코리아>에서는 외국의 고급 인재 기준에서 우리나라의 이민 경쟁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던데 과연 누구 의견이 맞을까.
하나 더 의문인 것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도 이질적인 것도 너무 많은데 저자는 쉽게 융화될 것처럼 본다는 점.
서양보다 동질적일 것 같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문화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리고 외국에서 온 첨단 기술 인재의 산업스파이 문제는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
아직도 직장 하나만 바라보고 버티려는 사람을 보면 내가 왜 답답함을 느끼는지,
의대만 들어가면 인생 바뀐다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의아한지,
자본주의와 시장경쟁체제를 부정하는 시각에 왜 거부감이 드는지
이 책을 보니 더 잘 설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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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왜 특정 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민족을 증오해야 하는가? 왜 특정 지역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타 지역민을, 그 지도자를 혐오해야 하는가? 왜 특정 가족, 씨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들이 숭배해온 종교와 의식을 계속해서 따라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케이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엑시트 옵션을 갖고 있었지만 행사하지 않기로 하였거나, 혹은 행사하지 않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94) 아무튼 엑시트 옵션을 추구하는 자가 많아지는 사회에서, 착취에 여념이 없거나 혁신을 게을리하는 조직은 빠르게 도태될 것이다. 그곳이 아니면 갈 곳 없는 자들만 그 회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엑시트 옵션을 많이 가진 자들부터 도태되는 회사, 침몰하는 조직에서 뛰어내릴 것이다. 그들은, 그 조직의 도태가 시작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민감한 촉수를 가진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그 도태를 막아보려고 애쓰다가 어느 순간에 그 동안 쏟아부은 노력을 거둬들이고 조용히 엑시트 옵션들과 접촉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내부자들만 알 수 있던 침몰해가는 조직의 조짐들이 시장에 퍼질 것이다.
178) 문제가 되는 경우는, 네트워크 위계의 상층을 장악한 리더십이 인공지능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해 탈숙련화deskilling가 발생할 때다. 바로, 연공서열로 짜인 한국과 일본의 관료제하에서 50대와 60대의 리더들이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근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인공지능의 출현과 작동을 어린 시절부터 겪으며 자란 젊은 세대와 한 조직 안에서 의사소통과 주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다. 조직의 하층이 상층보다 의사 결정 구조의 근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고, 상층은 딥러닝과 빅데이터, 각종 통계적 분석과 추론에 기반하여 제공된 데이터를 분석할 줄도, 해석할 줄도, 적용할 줄도 모른 채로, 젊은 팀원들이 만들어 올리는 '쉽고 간결하게 쓰인 보고서'만을 읽는 경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나이 든 세대의 리더십에 '순응'할 뿐, 승인하고 존중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181) 조직 자원과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과 그렇지 못한 청년층 간의 지식 보유량 역전 현상은 한국형 위계 구조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이미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 기반 협업 시스템으로 변모하는 새로운 시대에 조직 상층과 하층의 인공지능 기반 지식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역전되면서, 조직 내부의 리스크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것은 나이에 기반한 사회 전체의 연공서열 구조가 기업 내부에 투사된 채로 장기간 지속되어온, 한국형 위계 구조의 필연적 결과다. 기술과 지식이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시대에, 기술을 업데이트하는 데 실패한 혹은 뒤처진 리더십이 네트워크 위계의 상층을 장악하는 경우, 시장의 현황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조직의 역량과 방향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결여된 채, 시류에 영합하는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시류조차 읽지 못해, 뛰어난 하급자들의 미래를 책임져줄 성과마저 외면하게 된다(2024년,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최상층부에서 그러한 오판의 리더십을 목격하였다).
또한, 조직 자원과 자산은 보유했지만 인공지능 기반 지식 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중장년층과 그와 반대 상황인 청년층 사이에 극심한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바로 자산계급 대 지식계급의 불일치가 증대하며 발생하는 세대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극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기존의 조직 자원을 보유한 기성세대는 정년 연장을 통해 조직 자원에 대한 점유 기간을 늘리려 시도할 것이고(그렇게 하고 있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점유한 조직에 진입하려고 투쟁하는 자들과 외부에서 새로운 목초지를 개발하는 자들로 이분화될 것이다.
기성세대가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혹은 기성 정당, 국가 관료제) 연공제 조직에 진입하여 장기적으로 조직을 접수(?)하는 전략과 기다리지 않고(그들의 생명줄 연장에 기여하지 않고)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길을 택한 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 것이다.
205) 남편 없는 출산을 택하더라도 여전히 직장은 필요하다. 시장경제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나의 존엄을 지킬 수는 없다. 오늘 날 청년 여성에게 직장은 필수재이고 가족은 사치재다.
246) 안식/육아 휴직 비용의 사회보험화는 자본의 저항을 무마시키고, 장기 휴가를 통한 재생산 혹은 재충전 활동을 권리화함으로써 출산/육아 활동에 새겨지는 일터에서의 낙인을 없애는 한편, 아이를 갖지 않는 다른 직원들의 휴식과 복지까지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뿐만 아니라 장기 휴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부모)을 돌보는 시간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 나아가 병가가 아니어도 장기 휴식할 권리를 보험을 통해 노동자에게 보장함으로써, 노동의 끝없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편적 휴식과 충전의 기회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누리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보편적 휴식과 충전의 기회는 이 체제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다른 직장과 직종을 꿈꿀 기회까지도 제공할 것이다. 바로, 엑시트 옵션을 예비하는 시간이다.
294) 한국 사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화된 노동시장에서, 정규직-비경규직-이주 노동자로 삼중화된 노동시장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나아가, 이미 정착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조선족을 필두로 이주 노동자 중 일부는 합법적인 정규직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면서, 그들 내부에서도 불평등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다(조혜란 2025).
298) 이런 점에서 이주 노동자 이슈는 우파 입장에서 꽃놀이패에 해당한다. 이주 노동이 늘어날수록, 좌파는 이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뉜다. 좌파 내부의 보편주의자들은 이주 노동을 끌어안음으로써 좌파 정치의 외연을 확장하려고 할 테고, 그럴수록 좌파 내부에서 전통 노동 대 소수자 정치의 대립 각은 첨예해진다. 특히 전통 노동 세력이 저임금 분야 위주로 조직화되어 있을수록, 그 기술의 성격이 외국인이 금세 습득할 수 있는 도구적인 것low tool skills 일수록, 가장 커다란 장벽인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개입이 덜한 것 low interpersonal skills 일수록(Lee &c Lee 2015), 이들은 이주 노동자들과의 더 심한 경쟁에 노출되기에(대표적인 산업이 건설 분야다) 이주자를 옹호하는 새로운 소수자 정치와의 파열음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299) 이민 이유는 작과정당뿐만 아니라, 우파정 당 내부에도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균열은 미국과 유럽에서 국제주의와 세계화를 추진해온 전통 우파가 사그라들고, 신 극우파가 출현하여 우과정당을 장악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2000년대 이후 극우정당에 의한 의회와 행정부의 장악은 한두 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그 궁극적 원인은 세계화와 이민이다(Podobnik et al. 2017).
305) 반이민 정치가 본격화되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왜 정치 위기가 시작되었는가?
어쩌면 이주자는 핑계일지 모른다. 그 자리에 소수자, 여성이나 페미니스트, 장애인을 대체시켜도 우파 포퓰리즘은 똑같이 작동할 것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밀려서 탈락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다. 어떤 사람이 직장을 잃거나 얻지 못할 경우, 거기에는 수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먼저 자신이 그 자리에 적격이 아니라서, 수행 능력이 떨어져서, 일자리를 얻으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혹은 그 직장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퇴출되었을 수 있다. 혹은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일자리를 얻지 못했거나 그만두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외국인이나 여성이 갑자기 일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바람에 내국인이나 남성이 일을 구하는 것이 힘들어졌을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실직자들/구직자들은 외국인들 때문에, 외국 상품 때문에, 다른 소수자들(여성들)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들 사이에서 외국인 노동자/여성에 대한 좌절, 질시, 분노가 끓기 시작하고, 특정 장소에서 특정 정치인 주위로 그 질시와 분노가 결집한다. SNS는 그러한 분노를 결집하는 장소 역할을 한다. 예전이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사그라들었을 분노가 서로의 댓글을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SNS는 '지역마다 산재해 있지만 권위 있는 책임자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마을 회관, 게시판, 확성기 그리고 무기고와 같다. 전통 사회에서 몇 달을 거쳐 입에서 입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을 분노가 며칠 만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타오른다. 이렇게 마른 장작불같 이 타오르는 '순간성'과, 특정 정치적 문화적 성향을 증폭시키는 필터버블 메커니즘이 조성하는 '편향성'이 결합되면 몹mob이라 불리는 성난 군중이 출현한다.
이 연쇄 고리에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SNS의 도래와 함께 발흥한 포퓰리즘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소수자를 공격한다. 그 약한 고리는 미국에서는 이주자였으며, 한국에서는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였다. 결론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는 경제적 양극화와 SNS의 휘발성이 맞물려,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면서 발생한다. 그 휘발성에 불을 지르는 자들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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